카이로-역사의 신기루를 잡다
이집트를 위해 기생하듯 언제나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단어 ‘신비(神秘)’. 이미 식상할 때도 됐는데 피라미드, 스핑크스는 아직도 고고함을 유지한 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들의 도도함이 유지될 수 있는 데에는 아직도 수많은 추측과 해석이 난무하는 베일에 가려진 이집트 역사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이곳에 도착한 여행자는 누구나 고고학자가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의 해석에 따라 용맹무쌍한 전사들의 싸움터가 되기도, 아름다운 로맨스의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하는 이집트 존재 자체가 무한한 이야기의 원천이 되준다.
여행기자라는 직업 덕택에 갈 수 있었던 이집트. 나에게 성큼 다가온 이 신비의 지역이 여행 동안 어떤 서사시를 그려줄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집트 여생의 시작, 피라미드
그 유명한 피라미드와의 첫 만남은 ‘어랏! 저게 피라미드야?’라는 황당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서울에서 가장 도시적인 곳, 광화문의 높다란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덕수궁처럼 피라미드도 평범한 카이로 풍광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피라미드 입구 옆 편에는 유럽 패키지의 모든 것을 보여주듯 수많은 대형 차량들이 알록달록한 색을 자랑하며 주차돼 있고 또 한편에서는 경찰들이 낙타나 말을 타고 질주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런 이질적인 역사의 현상은 상태가 가장 양호한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를 주축으로 쿠푸 왕, 멘카우라 왕 피라미드가 사이 좋게 위치해 있다. 만화책에서 보듯 반듯한 사면체를 상상했던 피라미드는 외장용 화강암이 도둑맞아 세월의 콩고물이 묻혀진 울퉁불퉁한 인절미 모양의 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피라미드 내부 관광은 ‘비위가 강한 코’와 ‘납작 업드릴 수 있는 유연함’이란 필수 준비물을 필요로 한다. 내부가 매우 가파르고 좁아 전세계인의 땀내음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몸을 반쯤 접고 낑낑거리며 내부를 들어갈 때 그런 이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어린이 관광객들은 고개를 수그리지도 않고 유유히 내부를 들어가는 여유를 선보이기도 한다. 내부는 상상만큼 화려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지만 직접 역사의 단면을 체험했다는 것만으로 관광객들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로 가득하다.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 앞을 따라 내려가면 먼 허공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스핑크스와 맞닥드린다. 아랍인들에 의해 코가 깎이고 영국인에게 수염을 빼앗겼지만 그 위엄과 핸섬한 외모만큼은 그대로다. 잘생긴 파라오의 얼굴에 넋을 잃고 앞부분만 바라보다 문득 뒤편으로 눈을 돌려 꼼꼼히 유적을 살펴보면, 거대한 앞발과 달리 비율에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는 앙증맞은 뒷발과 꼬리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상술 NO! 흥정 YES!
기자는 관광의 메카 지대이다 보니 각종 상인들의 무법지대로도 유명하다. 특히 낙타호객꾼은 이집트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에게 익히 알려진 사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호객행위에 대응하는 관광객들의 똘똘한 대응책이 뒤따르자 호객의 범위도 더욱 업그레이드되고 상술도 한층 영리해졌다.
이젠 낙타뿐 아니라 이상한 막대기를 들고 달려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거나 "예쁘다"란 말에 약한 여성 여행객을 공략해 "Pretty!!"를 연발하며 느글느글하게 다가오는 아저씨까지 초보 배낭여행객이라면 어디까지가 호의고 상술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상술이 난무하는 이곳에서도 반드시 경험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낙타 타기'다. 예전에는 두서없이 아무 곳에나 자리 잡고 있던 낙타들을 최근들어 기념품을 파는 장소에 모아 놨는데 그 몇 십 마리의 낙타가 앉아있는 모습 자체가 장관을 이룬다. 귀염성 띈 얼굴, 세상을 달관한 듯 무관심한 눈빛이 보기만 해도 이집트의 역사를 머금고 살아온 동물이란 느낌을 준다.